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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주얼리 도시 발렌자에 무슨일이?


- 글: 김성희 주얼리 디자이너 -
등록일 :

이태리 발렌자111



* 이 글은 지난 수개월 동안의 개인적 경험과 이탈리아 주얼리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자세한 수치나 통계 자료가 빠져있는 것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과 2018년 비첸자오로 주얼리 박람회를 방문할 때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는 발렌자의 이웃 업체들에 대해 걱정하는 협력업체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이들은 주얼리 도시 발렌자에 닥친 경제 위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이 도시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2010년경만 해도 1,700개가 넘는 업체가 종사하던 발렌자는 시간이 지나며 1,000개, 700개 등 그 수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다. 회사 수가 줄어들면서 종사자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2018년엔 불가리가 발렌자에 거대한 공장을 세우고 700명의 직원을 고용하면서 발렌자에 관련된 무수한 소문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가십거리가 되었다.


2020년 2월, 이탈리아는 코로나 최대 확산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전국에 전면 봉쇄령을 내렸다. 회사, 매장 및 공장, 그리고 학교는 문을 닫고 통금 시간이 생겼으며 관공서와 슈퍼마켓, 약국 등 필수적 업종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언론은 2차 대전 후 최대의 위기라고 보도했다.


여름이 오고 상황은 안정되는 듯 보였다. 2020년 비첸자오로 9월 쇼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지만 참여 회사도, 방문객도 적은 조촐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늦가을로 접어들며 초반보다 더 많은 수만 명대의 확진자가 생겨났고 이탈리아에는 다시 전면 봉쇄령이 내려졌다. 2021년 1월 비첸자오로는 개최되지 않았다. 스위스 바젤월드도 2020년과 2021년을 건너뛰었다. 다행히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봉쇄령은 점진적으로 풀렸다.


마침내 2021년 9월, 비첸자오로가 개최되었고 불안함을 무릅쓰고 1년 9개월 만에 방문했다. 아직도 많은 수의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아 전시장의 규모는 줄어들었고 부스의 위치도 대부분 바뀌어 있었다. 원활한 공기의 흐름을 위해 부스의 인테리어는 모두 동일한 디자인의 오픈된 형태로 되어 있었다. 다른 바이어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며 많은 회사를 방문해 대량의 제품을 구입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회사에 주문을 하면 납품까지 40일 정도가 걸리기에 모든 일정을 감안하여 연말연시 대목에 판매할 제품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마지막 날 방문한 한 업체는 “이번 전시기간에 우리가 회사를 설립한 이후 가장 많은 오더를 받았어요.”라고 말했는데 자존심을 지키려고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0월 중순, 한 회사가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맞춰 납품할 수 없다며 시간 여유를 더 달라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다른 회사들도 줄줄이 주문 제품을 11월 말이나 12월 초가 되어야 납품할 수 있다고 연락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단 하나, 주문 폭주로 인해 주말까지 공장을 풀가동해도 납품일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공장에 방문한 한 협력업체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주문장들을 보여주며 “9월부터 더 이상 주문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품 기일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지금(11월 말) 주문하면 내년 3월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주얼리 마운팅이 준비되었지만 보석을 박을 조각사가 없어 회사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일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회사 문을 두드려보지만 일자리를 얻기는 힘들다. 일자리가 없어서 혹은 회사의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일손이 부족하다. 그러나 모든 인력들이 제조에 몰두하느라 일을 가르쳐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 회사는 새사람을 쓰지 못한다.


한 진주 도매업자는 작년부터 중국과 일본 출장이 불가능해지자 양심적인 진주 양식업자들과 이제까지 구축해온 신뢰만으로 상품을 공수 받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신상품을 받는 진주 도매업자라는 소문이 나 이런 행운조차 갖지 못한 더 작은 규모의 진주 도매업자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업자들의 도매업체가 되었다.


발렌자 주얼리 회사들의 일이 많아진 이유는 단순히 우리 같은 주얼리 숍들의 주문이 쇄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의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의 협업 때문이다. 최근 세계 최고 주얼리 브랜드들과 이탈리아 주얼리 제조업체들과의 협업율은 부쩍 높아졌다. 프랑스의 모 브랜드는 발렌자의 브랜드 하청업체로 유명한 회사의 지분을 상당량 구입하기도 했다.


발렌자에 불어닥친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보상심리가 작용한 포스트 코로나 효과라고 하기엔 너무 거세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모부생을 비롯한 프랑스 주얼리 브랜드들이 하청업체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시아에서 제작하면 공임이 더 싸다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이웃 유럽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소통이 용이하며 무엇보다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다는 장점이 커 제품에 대한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결국 비즈니스에 이득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발렌자는 우리나라의 종로 3가처럼 주얼리 제작에 관련된 모든 노하우와 재료, 기술, 기계회사들이 집중되어 있고 배송이 수월하며 수출입 관세가 없다.


발렌자는 2021년 6월 1일, ‘유네스코 창의도시(Creatives Cities Network Unesco Design)’ 등재 신청을 마쳤다. 발렌자의 금세공인들만이 가진 탁월한 창작력과 제작 노하우 덕분에 이 도시의 이름은 하나의 보증서, 아니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발렌자에는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회사들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기계를 구입하고 기술을 익혀 회사를 키운 덕분에 현재 자기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제조사로 성장했다. 이들은 수시로 프랑스와 스위스 브랜드들의 러브콜을 받는다. 유명 브랜드의 하청 업을 받아들인 회사들 중에는 나름 자신의 브랜드로 잘 알려진 회사들도 있다. 자존심을 접고 받아들인 하청 협력은 회사에 금전적 안정감을 주고 기술적 노하우를 받아 그들만의 주얼리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쨌든, 현재 발렌자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 만큼 많은 이들이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이 많은 제품의 종착역이 소비자의 보석함이 될지, 아니면 매장 진열장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기사를 퍼가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예)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



 

기사분류 : 해외뉴스, 다이아몬드, 유색진주, 디자인, 유통,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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